기획전시 개항, 부산항 150년
-근대 항만의 탄생부터 세계적 항만으로의 도약까지
국립해양박물관(관장 김종해)이 부산항 개항 150주년을 기념하여 9월 27일까지 기획전시 《개항, 부산항 150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1876년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으로 부산항이 개항된 이후 150년 동안 항만 시 설과 운영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조명한다. 국립해양박 물관 측은 개항•항만 관련 유물·영상•모형 등 소장품 100여 건을 시간적 흐름에 맞춰 전시했다.
전시는 총 6부로 구성된다. 개항 이후 산이 깎이고 바다가 메워져 근대 항만으로 탈바꿈하는 과정부터 전쟁의 폐허를 딛고 컨테이너 부두를 갖추면서 세계적 항만으로 성장하기까지, 150년에 걸친 부산항의 극적인 변화를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프롤로그 - 서문: 부산항 이야기를 열며
전시의 입구에선 1876년 강화도조약이 부산항의 성격을 바꾼 전환점이었음을 조명한다. 이는 조선이 오래된 교류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국제 질서 안으로 들어서는 커다란 변화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는 아주 오래전부터 바닷길을 통해 세계와 이어져 왔다. 개항 초기의 부산항은 다른 나라의 필요에 따라 산이 깎이고 바다가 메워지며 달라져 갔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전쟁이라는 시련을 극복하고 무너진 부두를 다시 일으켜 세계가 주목하는 항만으로 성장시킨 것은 우리의 땀과 노력이었다.
1부 - 시선: 탐색에서 침략까지
1부 전시에서는 하멜의 표류 기록, 브로우튼의 「북태평양 탐사항해기」 등 개항 이전 부산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쇄국과 통상 거부 정책을 펼친 조선이 서양 열강에게 호기심의 대상에서 경쟁의 대상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서양인의 기록으로 담겨 있다.
19세기 말까지도 조선은 '은둔의 나라'로 바깥 세계와 담을 쌓은 채 살아왔다. 외국과의 교역은 철저히 제한하여 중국과는 공식 외교 관계를, 일본과는 부산 왜관을 통해서만 제한적으로 교역을 허용했다. 흥선대원군은 전국 곳곳에 척화비를 세워 서양과의 통상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러나 조선의 바다에 낯선 서양의 배들이 거듭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도 위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 조선은 강대국들이 차지해야 할 목표가 되어갔다.
부산은 조선으로 들어오는 바닷길의 첫 번째 문이었기에 빗장이 더 단단했다. 개항 당시 부산 해안에는 배를 대고 짐을 싣고 내리는 근대적 부두 시설조차 없었고, 외국 배의 접근을 막는 것이 항구의 역할이었다.
강대국들의 시선이 조선을 향하는 사이에도 부산항은 조용한 포구로 남아 있었다.
2부 - 개항: 열린 문, 바뀐 항만
2부에서는 해관•감리서 설치, 조일통상장정 체결 등 개항 이후 부산항의 운영 체계가 갖춰지는 과정을 관련 문서와 사진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부산항의 근대 항만으로서의 첫걸음을 조명한다.
사실 조선에서 바깥 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18세기 실학자들은 청나라의 앞선 문물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흐름은 19세기 개화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전통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반발도 만만치 않아, 개항을 전후한 시기 조정은 두 목소리 사이에서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정작 나라의 방향을 결정해야 할 지배층은 부패와 권력 다툼에 빠져 있었다.
19세기 후반,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된 경험이 있던 일본은 같은 방식으로 조선을 압박했다. 1875년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군함을 앞세워 조약 체결을 강하게 밀어붙였고, 당시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하던 청나라도 조선에 일본과 협상할 것을 권유했다. 결국 1876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이 체결되며 부산항의 빗장이 풀렸다. 이 조약은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맺어진 비대칭 조약으로, 치외법권과 무관세 등 조선에 불리한 조건이 담겨 있었다. 이후 조선은 조약 개정을 통해 불리한 조건을 고치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 결과 1883년 조일통상장정 개정으로 관세 부과 권리를 되찾았고, 부산에는 정식 해관 과 감리서가 함께 세워졌다. 해관은 오늘날 세관처럼 드나드는 배와 화물을 검사하고 수출입 관세를 걷는 기관으로, 개항 이후 처음으로 외국 상인에게 세금을 매길 수 있었다. 감리서는 개항장의 행정•외교•재판 경찰 업무까지 총괄하는 기관이었다. 두 기관이 함께 들어서면서 부산항은 비로소 근대 항만으로서의 운영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3부 - 격동: 수탈의 시대, 부산항
3부의 전시는 일제강점기의 부산항이 항만 시설이 확장되는 동시에 수탈의 통로가 된 모습을 담았다. 동시에 착취에 맞선 부두 노동자들의 역사도 조명한다.
일본은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조선의 논밭과 어장, 산림까지 낱낱이 조사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부산항은 일본의 대륙 침략을 위한 발판으로 바뀌어 갔다. 일본은 부산항만을 넓히는 대규모 공사 를 벌였다. 용두산 근처에 있던 산들을 깎아 그 흙으로 바다를 메워 단단한 땅을 만들었다. 이 공사를 착평•매축이라 부른다. 오늘날 부산 북항 일대의 평평한 땅 상당 부분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조선 민중은 이 공사에 강제로 동원되어 일해야 했다. 완성된 땅 위에는 거대한 부두와 철길 등 근대 항만 시설이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부산항은 대륙 침략의 길목이자 일본의 수 체계를 완성하는 패가 됐다.
이후 부산항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의 항구에서 쌀•콩 등 농산물이 끊임없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바다에 서도 일본은 개항 초부터 우리 어장을 조직적으로 장악했고, 조선우선주식회사를 만들어 부산을 기점으로 연안 뱃길까지 독점했다. 새로 만들어진 부두와 철도에는 침략 물자와 군대가 끊임없이 오갔다.
이 시기 부두 노동자들은 임금 착취와 민족 차별에 맞서 싸웠다. 1921년 임금을 일방적으로 낮추자 5,000 여 명이 하나로 뭉쳐 총파업을 일으켰고,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규모 노동 항쟁으로 기록되었다. 한편 부산의 상인들도 외국 자본의 침투에 맞서 스스로 회사를 세우고 상권을 지키려 했다. 가혹한 수탈 속에서도 부산항의 사람들은 착취와 차별에 맞서 싸웠고, 그 역사는 부산항의 또 다른 뿌리가 되었다.
4부 - 도약: 세계적 항만으로
4부에서는 해방 이후 6•25 전쟁 속 유일한 보급 통로로서의 역할과 전후 재건, 컨테이너 부두 건설을 거쳐 세계가 주목하는 항만으로 성장한 과정을 다룬다. 이 섹션에는 1991년 자성대 부두의 컨테이너 누적 처리량 1,000만 TEU 돌파 기념 동판 등 현대 부산항의 성장을 보여주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6•25 전쟁 가운데 피난수도 부산은 한국의 마지막 보루였다. 전쟁 중에도 항만 기능은 멈추지 않았다. 당시 원산과 흥남 등 북쪽 항구들이 폭격으로 파괴되면서 부산항은 UN군의 보급 기지이자 해외 원조 물자가 들어오는 최후 통로가 됐다. 전쟁이 끝난 후엔 부서진 시설을 하나씩 복구하고 항만 운영 방식도 새롭게 정비해 나갔다. 이 과정은 부산항이 나라 경제를 이끄는 중심 항만으로 도약하는 바탕을 조성했다.
1960~1970년대 세계 해운 시장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규격화된 상자(컨테이너)에 화물을 담아 기계로 옮기는 방식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대형 컨테이너선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항만을 갖추는 것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됐다. 이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한 부산항은 1978년 자성대 부두에 우리나라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 터미널을 열었다. 이후 경제 성장과 함께 수출입 화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신선대, 감만 등 대규모 컨데이너 부두를 갖추며 부산항은 동북아시아를 대표하는 항만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부산항은 연간 약 2,440만 TBU의 화물을 처리하는 세계 7위의 항만이다. 전체 물량의 절반 이상이 최종 목적지로 가기 전 부산에서 다른 배로 갈아타는 환적 화물로, 이는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2위의 환적 거점이다. 부산항은 신항을 중심으로 첨단 기술을 적용하여 운영을 또 한 번 가다듬고 있으며, 탄소 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체계까지 갖추며 미래 항만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다.
에필로그 - 지평: 다음 150년
전시의 끝에는 수에즈 운하 대비 약 7,000km를 단축하는 북극항로와 친환경 항만 체계를 바탕으로 세계 해양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부산항의 비전이 제시된다. 또한 전시의 중심부에는 부산항 150년의 변화를 한눈에 담은 실감형 영상 항적: 부산 항이 걸어온 길>이 자리한다.
과거 이방인의 표적이었던 우리 바다는 이제 주도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기회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부산항은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는 기존 항로보다 운항 거리를 약 7,000km 줄이고 항해 일수를 최대 15일 앞당기는 북극항로를 통해 새로운 해양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운항 거리가 줄어들면 탄소 배출도 줄어든다. 전시는 북극항로와 친환경 항만 체계를 바탕으로, 부산항이 세계 환경 규제에도 대응하는 항만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국립해양박물관이 담은 부산항의 시간선은 단순한 회고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각국과의 인과 관계를 섬세히 다루며 발전한 과정과 미래의 비전을 묘사한다. 모든 순간, 부산항은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부산항은 강압적인 통상을 겪고서 관세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한 현장이자 수탈이 심해질 땐 노동자의 권리를 처음으로 이끌어 낸 터가 됐다. 또, 전시라는 국가 위기를 거쳐 국가의 경제적 부흥을 이끌었으며 이제 세계 기후 위기를 북극항로 개척과 환경 규제의 기회로 만들어 가는 항만이다. 국립해양박물관이 전하고자 하는 부산항에서 우리는 한국의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해양의 서사로 연결돼 있음을 알게 된다.
전시명 | 부산항 개항 150주년 기념 기획전시 (개항, 부산항 150년》
전시 기간 | 2026. 6. 30.(화)~ 9. 27. (일)
전시 장소 | 국립해양박물관 기획전시실 1(약 540m)
전시 규모 | 부산항 관련 유물• 영상• 모형 등 100여 건
관람료 | 무료
관람 시간 | (평일)09:00~ 18:00, (주말, 공휴일)09:00~ 19:00, 월요일 휴관
주최 | 국립해양박물관
문의 | 051-309-1900 / www.nmm.go.kr
*원본 출처: 월간 「海바라기」 8월호 https://www.mariners.or.kr/business/business03_view.php?bd_code=magazine&bd_idx=7598